Thinking
Interbrand White Paper Vol.5 인간관계, 그조차 브랜딩이 필요하다
창세기, 아담 혼자인 것이 외로워 갈빗대로 이브를 만들었으나, 비로소 둘이 되었을 때 서로 시기, 질투, 싸움을 일삼게 되고,
삼국시대, 충신이 필요했던 동탁은 여포를 양자로 들이지만, 비로소 호형호제가 되었을 때 배신과 강탈과 횡포를 부리게 되며,
그리고 2020 현재, 연애는 하되 결혼을 싫다는 여성의 비율이 30년 새 10배가 늘었다.
혼자는 외로워 연애는 하겠으나, 둘은 부담스럽다는 것이 아니겠는가?
인류의 시조부터 현재 지금 이 시점까지,
인간은 왜 변치 않고 혼자면 외롭고, 둘이면 빡치는가..
이 같은 철학적 고찰에 이보다 더 실질적 정답 도출이 가능한 때도 없다. 무용담처럼 ‘라떼는! 역병이 돌아서 한 달 내내 집콕만 했어!’라고 할 날이 오기는 할까 싶은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으로 인해 이혼율과 가정불화가 급증했다는 뉴스를 자주 접하는데, ‘why’라는 질문에 필자는 이렇게 답한다. 비단 코로나 때문일까?
나.를. 모.르.고. 너.를. 모.르.니 인류는 백.전.백.패 일수밖에.
1. 나는 누구인가
우리는 때에 따라, 장소에 따라, 상황에 따라 역할이 상이하다. 필자는 집에서는 애교 많은 딸, 회사에서는 프로페셔널을 지향하는 전문 컨설턴트, 골프장에선 해도 해도 늘지 않는 실력 덕에 쭈구리 허접 때기. TPO에 따라 각기 다른 생활을 이질감 없이 해오고 있으며 개인적으로 회사에서의 삶을 가장 선호하는데… 이것을 브랜딩에서는 페르소나라고 부른다.
페르소나. 고대 그리스 배우들이 쓰던 ‘가면’이라는 뜻으로 현대 심리학에서는 ‘타인에게 비치는 외적 성격’으로 사용한다. 다시 말해, 어떤 상황과 환경에 맞춰서 적절하게 행동한다는 의미로 풀이될 수 있는데, 여기서 중요한 단어는 ‘맞춰서’와 ‘적절하게’ 가 아닐까.
출처/ⓒ배달의민족 페이스북(facebook.com/smartbaedal)
브랜드를 예로 들어보자. 배달의민족 같은 경우, 음식을 주문할 때 시키자고 하는 사람은 윗사람이지만, 시키는 방식을 정하는 사람은 집단의 막내라는 점을 고려하여 막내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친근한 동네 형’을 페르소나로 설정, 즉 똘끼 충만하고 발랄하지만, 개념은 탑재한, 시대를 비웃는 풍자와 해학을 지녔으며, 음울함이 촌스럽지만 쿨해 보이는 배달의민족다운 인물 설정을 통해 그들의 주요 타겟인 20대가 선호하는 상황과 환경에 맞춰서 잉여, 키치, 덕후, 언더, 비주류 등 브랜드만의 스타일이 확고한 T&M을 적절하게 전달하고 있다.
이 페르소나가 인간 세계에서는 어떻게 적용될까? 네이버 토요 웹툰 중 <유미의 세포들>에 등장하는 남자 주인공 신순록. 그의 직장에서의 모습은 냉철하다. 늘 주름이 잡혀 있는 수트에, 지적 미를 뿜뿜하는 검은 테 안경, 왁스가 가진 철학을 그대로 구현해버린 정갈한 8:2 가르마, 누구에게나 존대하는 말투로 업무에 있어서 실수 없이 프.로.페.셔.널.함을 온몸으로 강조한다.
퇴근 후 그의 모습은 느슨해진다. 집에서 일 얘기는 반칙, 덮머리에 안경, 반신욕을 하는데 한 시간이나 필요로 하는 집돌이의 모습. 신순록의 직장에서 모습과 퇴근 후의 모습이 다르지만 이러한 정체성의 분리를 어색하게 느끼지 않으며 때로는 자신을 표현하는 하나의 ‘전략’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집돌이의 모습이 그의 본캐라는 가정하에, 그의 프로페셔널한 페르소나는 회사가 선호하는 상황과 환경에 맞춰서 본인만의 스타일을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여기서 문제는 가면과 나 스스로의 간극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넓어지는 데에 있다. 한마디로 과장된 페르소나가 스스로라고 착각하며 가면이 마치 자신인 양 살아가다가 가면이 벗겨지는 어느 순간 그 상실감은 쓸데없이 크게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SNS 계정에서 스스로를 어느 정도 꾸밈 있게 보여주다 괴리감을 느꼈을 때, 딱히 타인의 질타가 없어도 사람은 수치심을 느끼며, 콤플렉스 잠복균은 일시불로 요란스럽게 티를 내어 온몸에 두드러기처럼 올라온다. 부족하다고 생각한 것들이 더 크게 부족하게만 보이는, 못났다고 생각한 것들이 더 크게 못나 보이는, 멘탈 면역력이 바닥을 치는 공허한 어느 밤. 외로움은 이때 찾아오는 것이다. 정확히 내가 누구인지 모를 때, 내가 알던 내가 더 이상 내가 아닌 것이 되어 버린 거 같을 때, 인간은 자존감이 낮아지는 외로운 시간을 혼자서 보내게 된다.
누구나 자신만의 페르소나를 만들고 활동할 수는 있지만 ‘스스로’의 탄탄한 기반 없이는 페르소나의 생명력을 이어 가기 어렵다. 페르소나는 ‘다른 나’가 아니라 ‘또 다른 나’가 되었을 때 비로소 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내가 누구인가를 완벽히 알고 내가 하나의 장르가 되어 야무지고 굳세게 속을 꽉꽉 채우며 가면과 자신의 괴리감을 적게 했을 때, 비로소 인간은 혼자여도 외롭지 아니 한다.
2. 그렇다면 너는 누구인가
나를 알았다면 이제는 너를 알아볼 차례.
상대방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 우린 보통. 대게. 주로. 대부분. 신상 파악에 나선다. 그 사람의 취미, 좋아하는 음식, 가족관계, 출신 학교, 타고 다니는 차뿐만이 아니라 그 사람이 가진 고유의 결, 태도, 에너지, 말할 때의 온도, 눈빛의 흐름 같은 것을 찾아내어 이것들이 이 관계 형성의 진원지임을 알아가는데… 이것을 브랜딩에서는 타깃 분석이라고 부른다.
핵심 타깃을 분석하는 일. 제품을 또는 서비스를 구매하고 이용할 것 같은 수요층을 분석하는 것으로, 제일 먼저 즉각적으로 반응할 부류는 누구이며, 그들은 어느 부분에 열광하고 니즈를 보이며, 얼마만큼의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는지에 대해 분석하는, 브랜딩에서 가장 기초적이지만 매우 중요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출처/ⓒ현대카드(hyundaicard.com)
브랜드를 예로 들어보자. 현대카드의 그린카드는 치밀한 고객분석으로 2535 ‘럭셔리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하는 젊은 프리미엄 고객’이라는 새로운 고객층을 발굴, the black, the purple, the red에 이어 무려 10년 만에 밀레니얼 세대를 타겟으로 프리미엄 카드를 선보였다 (2018년). 타깃들이 반응할 낯선 곳으로의 여행, 사치스러운 호텔에서의 하룻밤, 근사한 한 끼 등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일에 소비할 줄 아는 라이프스타일 서비스를 중심으로 맞춤형 상품을 설계했다는 점, 소셜미디어에 친화적인 타깃의 성향상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유튜브 등 디지털미디어에 집중한 캠페인을 전개했다는 점, 대면보다는 온라인을 더 익숙해하는 타깃의 경향을 반영한 온라인 채널에 한정된 카드 신청 등 고객층 발굴, 상품설계부터 커뮤니케이션까지 타깃층 공략을 최적화해 출시 1년 만에 5만 장 발급을 돌파하는 등 타깃 분석의 성공 사례라고 볼 수 있다.
이 타깃 분석이 인간 세계에서는 어떻게 적용될까? 필자는 분기마다 한 번씩 만나는 모임이 있다. 6명으로 구성된 작은 조직. 각자 개성도 뚜렷하고 자기주장도 강해서, 오합지졸이 사람으로 태어난다면 이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해 볼 정도. 새벽 4시까지 술 마시고 칼 같이 출근하는 그 짓을 주 4회 열심히 씩이나 했던 20대에 만나, 한 끼라도 부실하게 먹으면 맥아리가 없는데 든든히 먹으면 소화가 안 돼서 더부룩한 30대가 되었고, 만나면 몹시 정신이 없다 가도 어느 순간 13번 치아에서 23번 치아까지 활짝 웃게 되며, 같은 주제로 대화를 하다 가도 어느 순간 서로 각자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있는 이 각개전투식 모임은 약 10년간 지속되고 있는데, 함께 여도 빡침 없이 유지되고 있는 이유는 단연 서로를 잘 알고 있어서이다.
그런데 여기서 포인트는 타깃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있는데 필자는 그 발굴 과정에서 상대방의 ‘관심사’를 알아보는 데에 시간을 투자한다. 상대방의 ‘관심사’를 알아가는 과정은 ‘많이’ 보는 게 아닌, ‘세밀하게’ 관찰하는 것. 무엇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지, 이 사람의 문제는 무엇이고 기회는 무엇인지, 그가 또는 그녀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란 무엇인지, 그것을 경험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지 등등..
우리 모임의 누구는 한 번도 이탈리아를 가보지 않았지만 어떤 도시보다 그곳을 사랑한다. 그래서 아직 미혼인 그가 결혼한다면 아마도 이탈리아가 신혼여행지일 것이다. 누구는 미끄덩한 생선을 만지지 못하지만 어떤 음식보다 초밥과 회를 사랑한다. 그래서 모임 장소를 정할 때면 늘 이자카야를 포함한다. 누구는 적당히 까칠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지만, 누구보다 다정한 사람이란 것을 알고, 또 누구는 집순이라 하지만 가끔은 밖으로 끌어내 주는 것을 원한다는 것도 안다.
낯가림이 심한 사람일수록 기억하라. 어색한 소개팅이 잡혀 있는 사람, 단둘이 대화하는 것이 어려운 사람, 당장 이번 주 상견례가 숨이 막히게 느껴지는 사람들이여. 백문[百問]이 불여일관[不如一關] 일지어다. 끊임없이 세밀하게 관찰하여 상대방의 찐 관심사 1개를 찾아보자. 그 찐 관심사 하나가 삭막한 당신의 삶에 재난지원금 같은 존재가 될 터이니. 상대의 관심사를 세밀하게 관찰하고 그것을 함께 나눌 수 있을 때, 단연 인간은 함께 여도 빡치지 아니한다.
3. 마무리하며
혼자서도 외롭지 않고, 함께여도 빡치지 않을지 고민하는 이들에게 기업이 하듯 자기 자신을 그리고 상대방을 제대로 브랜딩해 보라고 제안한다. 앞서 말한 대로 1) 나를 알고 2) 너를 알면 적어도 반은 성공한 브랜딩이다.
출처/ⓒ빙그레 인스타그램(instagram.com/binggraekorea/)
장수 브랜드 빙그레를 아는 고인물 여기 손! 올해로 52살이 된 빙그레는 스스로를 잘 안다. 반백 살 빙그레는 오래된 브랜드이고, 빙그레를 잘 아는 소비자들은 빼박 ‘고조선 건국 멤버’ 취급을 당하는 현시점에서 브랜드 스스로 젊어지기 위한 시술이 필요했던 것.
MZ세대인 ‘너’를 세밀하게 관찰한 것도 사실이다. MZ세대가 열광하는 아이템들 중심엔 ‘재미’가 있다. 실용성이 다소 떨어지더라도 재미가 있으면 더 잘 팔리는, ‘가성비’ & ‘가심비’ 시대를 넘어 재미까지 추구하는 ‘가잼비’ 성향이 강해진 것이다. 그래서 탄생한 ‘빙그레 왕국’. 웃음은 “가장 즉각적인 공감”이 아닐까? 곱씹거나 음미할 필요 없이 즉각적으로 다가오는 재미를 추구하는 MZ세대 성향과 콘텐츠의 T&M가 잘 맞아떨어졌으며, 이 과정에서 다시 가공하고 공유하는, 그들에게는 하나의 놀이를 즐기게 된 것이 아닌가 해석해보며, 최소 서른 살은 어려진 듯한 체감 나이 20대 빙그레에게 박수를 보낸다.
우리는 매일매일 세상에서 가장 가치 있는 브랜드 [나]를 만난다. 그리고 여기 [너] [그] [쟤]라는 수없이 많은 브랜드들도 있다. 내가 가진 가치를 자양분 삼아 진정한 내가 되고, 상대방을 세밀하게 관찰하여 더 큰 빛을 내는 우리가 되었을 때, 영양가 높은(a.k.a 외롭지 않고, 빡치지 않는) 브랜드의 관계가 완성되지 않을까? 이것이야말로 건강한 브랜딩이며 우리 각자에게 지속 가능한 성장의 토대가 되어 줄 거라 생각한다.
인간은 왜 혼자면 외롭고 둘이면 빡치는가!
오늘을 기점으로,
이왕이면 반대로,
혼자일 땐 안 빡치고, 함께면 안 외롭잖아~ 라고 생각해 보는 전환점이 되기를 바라며.